큰 파도를 보고 작은 물결은 무시하라.
숲에 불나면 좋은 나무도 탄다
어떤 주식종목이 좋아 보이는지, 어떤 투자처가 괜찮은지를
찾는 것보다, 전체 시장 변화에 맞게 자산설계와 생애설계를
새롭게 짜야 할 때다. 작은 전투에서 이기고 지는 것보다 전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보기 전에 먼저 숲을 보자.
전 세계가 경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양적완화다. 금리를 인하하고 자국의 통화가치를
낮추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환율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상존한다. 당장 우리나라 해도 일본의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과 그로 인한 엔화가치 하락 때문에 수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게 치고 빠지기?
지난여름부터 아파트가격 추세를 관찰하던 김형국 씨는 정부
가 갈수록 강력하면서 실질적인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아파트에 투자할 결심을 굳혔다. 금리도 많이 떨어
져서 은행 대출을 조금 무리하게 받아도 월급으로 이자를 감당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짧게 몇 달
에서 길게는 1~2년 정도 내다보고 치고 빠지면 1000만 원,
2000만 원 정도는 쉽게 벌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조금 어긋났다. 아파트 매입 후 시세는
그가 산 가격 근처에서 멈춰버렸다. 중개업소에 물어보니 그
많던 문의전화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매입한지 한 달밖에
안됐는데 이러다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는 것은 아닌지
좌불안석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따라 올리는 건
아닌지, 그러면 대출이자가 늘어날 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최성일 씨는 최근 주식투자에서 큰 수익을 냈다.
운 좋게 급등한 주식을 잡은 덕분에 거의 연봉에 육박하는
수익을 얻었다. 그는 이참에 전업투자로 나서볼까 생각 중이다.
15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치기도 했고, 월급쟁이로는 앞날이
뻔해 보였다. 직장을 나와 10년 넘게 전업투자를 하고 있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전업투자를 한다는 친구는
퇴사를 강하게 만류했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전업투자가
낭만적인 생활은 아니라는 이유였다. 친구는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직장으로 돌아가 월급 받으며 투자는 여유자금으로
편안하게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숲을 먼저 봐야할 시기
김 씨와 최 씨 모두 돌아가는 상황을 크고 깊게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짧고 피상적으로 보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판단과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가 침체로 빠지든 디플레이션
이 오든 말든 아파트를 사줘야 할 젊은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
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 같은 건 크고 보기 좋은 ‘기대이익’ 앞
에서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주식투자를 위해 종목을 선별하는 방법 중에 탑다운 투자,
버텀업 투자라는 것이 있다. 탑다운(top-down) 투자는 전체
경제 상황 분석에서부터 시작해 특정 업종의 업황을 체크한
다음 업황이 좋거나 개선될 가능성이 높은 업종에 속한 기업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기업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반대로
버텀업(bottom-up) 투자는 특정 기업을 골라낸 다음 기업이
속한 업종의 업황과 경제상황을 체크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탑다운 투자는 경제와 업황이 좋아야 투자
를 하지만, 버텀업 투자는 경제, 업황이 별로여도 해당 기업만
괜찮으면 투자를 단행한다. 숲을 먼저 보느냐, 나무를 중시하느
냐의 문제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숲을 먼저 봐야 할 때다. 전체 경제가
불황으로 빠져들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이는 투자처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숲에 불이 나면 아무리 튼튼한 나무
라도 불길을 피하기는 힘들다. 더구나 이런 시기에 안정적으로
현금흐름이 나오는 직장을 나와 전업투자를 하겠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순간의 작은 변화에 현혹돼 우왕좌왕하지 말고 보다 큰 흐름을
봐야 한다. 패러다임과 메가트렌드는 변하지 않는다.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 우리 가족의 삶과
자산과 재테크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고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