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이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터진 전쟁은 예상을 깨고 장기화하고 있으며 세계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서방 대 러시아·중국의 패권 경쟁도 본격화할 조짐이다. 정치철학자인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가 그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예측하듯, 이 전쟁으로 우리는 익숙했던 많은 것들과 결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했던 탈세계화의 경향은 코로나 전염병으로 가속화되고, 코로나로 인한 세계의 분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착될 것이다.”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국가 간 지역 분쟁을 넘어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바꾸고 평화 패러다임을 전복할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수천년간 동양과 서양이 충돌했으며, 오늘날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 확장과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가 부딪치는 이 평야의 접경지대에서 ‘지정학적 대분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강대국들 사이에선 비교적 오랜 기간 평화가 지속됐고, 1989년 냉전의 종식 이후엔 평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평화주의’가 자리 잡았다. 저자는 영구 평화가 가능하다는 서구 사회의 믿음은 전쟁과 전쟁 사이 잠시 찾아온 평화가 빚어놓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이 전쟁으로 ‘신냉전’의 도래를 점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저자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냉전이 아니라 제3차 세계대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새로운 제국들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된다면 한국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로마 격언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과 상관없는 다른 지역의 분쟁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대만과 한국, 냉전의 결과로 생긴 두 국가는 지금 또 다른 제국전쟁의 영향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통해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우리에게 실존적 결단을 요구한다.”

경향신문 신명수 기자